언어 허블 현상
- Hubble을 중심으로 살펴 본 메타 기호계의 존재 가능성 -
2013.06.27
이재웅 (李在雄)
철학은 삶의 본질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물론 일상적인 생활은 우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지구도 우주의 일부가 아니겠는가? 따라서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현대적 의미의 과학자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학문적 접근 태도다.
플라톤(Platon)은 『테아이테투스(Thaetetus)』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다가 물에 빠져 버린 탈레스(Thales)를 예로 들면서 진리 탐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 역시 '기하학자'(geometer)만 아카데미아에 들어올 것을 명확하게 현관에 공표한다. 그렇다면 고대로 돌아가보자. 과학과 철학이 강제적으로 분리가 된 현대에서 벗어나자. 철학적 관념체들도 일정한 과학적 진리가 들어 있을까? 물론 사후적으로 정리한 이해하기 쉬운 도표의 체계성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뉴턴의 9.8과 초파리의 번식 속도, 그리고 해바라기가 피는 날짜가 정확히 사전에 입력된 모듈(pre-wired modules)처럼 수학적 정확성을 지킨다는 차원에서 말하는 '과학'이다. 즉, 일체의 '그랬으면 하는 바램'(wishful thinking)을 벗어난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말한다.
그럼 탈레스로 돌아가보자. 그는 만물의 근원을 아르케(arche)라 한다. 바로 '물'(water)이며 대지는 물 위에 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현대인들의 일반적인 생각은 그냥 추상적으로 개념화된 물의 유동성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왜냐하면 일상 생활에서 목격되는 물질은 고체도 많기 때문이다. 물론 신체의 70% 이상이 체액으로 구성되었지만 새로 상담을 시작하는 상대방의 눈을 보면서 '액체성'을 느끼는 컨설턴트는 드물 것이다. 아무리 상대방의 눈가에 지속적으로 '액체'가 흐른다 할지라도 '눈동자'라는 고체성을 인지한다. 그러나 이 점을 탈레스라고 하여 왜 몰랐겠는가? 그는 B.C. 585년 5월 28일에 일어난 일식(日蝕)을 정확히 예언했다. 그리고 1년을 365일로 나누고, 1달을 30일로 정했다.「원(圓)은 지름에 의해 둘로 나뉜다」「이등변삼각형의 밑각(底角)은 서로 같다」「반원(半圓)에 내접(內接)하는 각은 직각이다」「두 직선이 교차할 때 맞꼭지각(對頂角)은 서로 같다」「삼각형은 밑변과 밑각이 주어지면 결정된다」와 같은 무수한 수학적 명제에 대한 입증에 성공한 탁월한 수학자이기도 했다. 이처럼 학문적 엄격성을 지닌 탈레스가 함부로 '물'을 만물의 근원이라 말했을 리는 없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고대 그리스 과학자, 흔히 철학자라 알려진 이들의 이론부터 차근 차근 검토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그토록 확고한 진리처럼 받아들여지는 '허블 상수'도 탈레스나 플라톤 등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허블 망원경'이 없는 바람에 주로 사용한 직관과 그에 따른 논증만으로도 얼마든지 허구임을 입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허블 상수는 다음과 같은 널리 공표된 '상식적 원리'에 의해 탄생한다.
별까지 거리 단위는 3가지를 주로 쓴다. 태양계 행성의 거리를 나타내기에 적합한 것이 AU(천문 단위)이다. 1AU는 태양과 지구 사이의 거리로 그 값은 1.5 x 108km이다. 다음으로 우리 은하의 거리를 나타내기에 적합한 단위가 광년(LY)이다. 1광년은 빛이 1년간 진행하는 거리로 그 값은 9.5 X 1012 km이다. 외부 은하까지의 거리에 많이 쓰이는 단위가 파섹(pc)이다. 1파섹은 연주 시차가 1초(′)인 거리로 그 값은 3.26광년이고 206265AU이다. 1pc = 3.26LY = 206265AU 별까지 거리를 측정하는 방법에는 연주시차가 있다. 연주 시차는 지구에서 6개월 간격으로 별을 관측할 때 그 별이 천구상에서 움직인 각의 1/2을 말한다. 별까지 거리(r) = 1/연주시차(P) 이다.
연주시차는 별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커지고 먼 별일수록 작아진다. 연주시차(P)가 1초인 거리를 1pc이라 한다. 거리지수(m-M)는 겉보기등급(m)과 절대 등급(M)차가 별까지 거리(r)와 관련된다. m-M = 5logr-5. 허블 법칙은 외부 은하의 거리(r)가 멀수록 후퇴 속도(v)가 빨라진다는 법칙이다. V = H r (H는 허블 상수)에서 r= V/H이다. (빛의 거리 [distance of the star, 별의 距離] )(두산백과)
그러나 한 가지 간과한 결정적 변수가 있다. 우리가 사는 지구를 A라고 하자. 그리고 특정한 은하계를 B라 하자. 그렇다면 어떤 방법에 의하여 은하계 B의 거리를 측정하는가? 바로 그 곳에서 발산된 '빛'이다. 우리는 '빛'의 도움이 없다면 외부의 물체를 인지하기 어렵다. 어두움 속에서 안경을 찾기 어려운 차원이 결코 아닐 것이다. 바로 눈(the naked eye)으로는 결코 확인하기 어려운 아주 먼 곳에 있는 은하계 B다. 그럼 또 다른 눈으로는 절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은하계 C에서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 빛을 전제로 해보자. 다음과 같은 모델이 가능할 것이다.
A (관측) ---------------- B (인지)
A (관측) ------------------------------ C (인지)
A (관측) -------------------------------------------------- D (인지)
추가로 은하계 D를 삽입하였다. 아무튼 A의 관찰자는 B, C, D가 내뿜어 낸 빛을 통해 다음과 같은 순서로 천체의 지도를 그릴 것이다.
가정 1) A < B < C < D
즉, 'A에서 B를 거쳐 C와 D로 향할수록 거리가 멀어진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에서 간과한 것은 바로 '시차'(視差)가 아닌 '시차'(時差)다. 어차피 시차라는 것은 모든 물체가 비슷한 곡률(曲率, curvature)의 적용을 받으므로 일괄적으로 오류를 수정하였기에 상대적일 것이다. 즉, 평면으로 보든 지구본으로 관찰하든 북미는 남미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지역이다. 그리고 영국과는 바다를 끼고 존재한다. 그리고 지구본의 '곡률'은 동일하기에 넓은 평면이 좁은 평면보다는 '구'(球)로 휘어버려도 역시 '큰 공'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직선과 곡선 등과 같은 '시차'(視差)가 아닌 '시차'(時差)를 적용하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 질 것이다. B, C, D라는 은하계에 각각 '시간의 값'(time valency)을 할당해보자.
가정 2) 은하계 B, C, D에 대한 과학적 관측 결과는 다음과 같음
B = 5억년 떨어진 곳에서 출발한 '빛'을 통해 존재한다 '착각'함
C = 10억년 떨어진 곳에서 출발한 '빛'을 통해 존재한다 '착각'함
D = 100억년 떨어진 곳에서 출발한 '빛'을 통해 존재한다 '착각'함
가정 3) 은하계 B, C, D는 '폭발 상태'에 놓인 빛의 잔상에 불과함
물론 아직 건재한 E, F, G 등 무수한 은하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논의의 편의상 '이미 폭발한' 은하계인 B, C, D만을 여러 가지 이유로 같은 카테고리에 묶어서 국지도를 만드는 중이라고 하자. 여기서 우리는 앞으로 5억년 동안은 멋진 허블 망원경을 통해 B, C, D라는 세 은하계가 또렷하게 '빛'을 내뿜으면서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을 한 상태에서 천체도를 그릴 것이다. 그러나 가정이 아니고 실제로 이미 사라진 은하계는 무궁무진하다. 그리고 위의 가정 2)에 등장하는 B, C, D와 같이 이미 사라져 버린 은하계도 우리의 천체도에 멀쩡히 존재할 것이다. 그러니까 아틀란스 대륙이 21세기 전 세계 지리 시간에 버젓히 등장하는 것이다. 이처럼 공시태를 무시하고 통시태가 적용된 것이 오늘날 우리가 믿도록 강요받고 있는 천체 지도가 아닐까?
상황이 이러하니 탈레스가 말한 만물의 근원, 즉 '아르케'(arche)라는 존재에 현대 과학자들의 발견 못 지 않은 우주적 진실이 발견된다고 하여 2천 년 전에 물에 빠져 버린 '철학자'(scientific philistine)로 무조건 폄하할 수는 없을 것이다. 논리적 입증, 즉 논증이 성립된다면, 그리고 더 이상 허점이 존재하지 않고 반복가능한 데이터가 실험 장소에 관계 없이 일정 수준 이상 드러난다면 '팩트'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아르케'(arche)는 '아르케인'(archein), 즉 '지배하다'(rule)란 뜻을 지닌 그리스 동사다. 여기서 잠시 언어철학(philosophy of language)으로 잠시 우회를 하도록 하겠다.
[01] 플라톤은『국가』에서 색깔에 의한 기만(602c)을 언급하며 그 원인은 심리적 문제보다는 영혼의 혼동(tarachê)이므로, 눈을 통해 기만하는(skiagraphia) 회화는 바로 마법(sorcellerie, goêteia)에 가깝다(Ibid, 602b)고 한다.
답글삭제獄에는 '언어'(言)가 존재한다. '감옥'(prison)에서 언어가 큰 작용을 하는 국가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독방감증(獨房監禁. solitary confinement)된 '수형수'(prisoner)만이 아니다. 여럿이 함께 감옥(a cell)에 갇혀 있다고 치자. 일상생활에서 향유했던 언어와는 양과 질이 달라질 것이다. 우선 세상이 돌아가는 흐름과 단절된다. 화제의 폭이 좁아진다. 그리고 일상적인 시민들에 비해 당연히 스트레스가 높을 수밖에 없는 이들이 모여 있으므로 서로 사랑에 대한 플라토닉한 토론을 기대하기 어렵다. 즉, 독방이 아니라 할지라도 '감옥'(a cell)은 언어의 제한을 받는다.
그러나 獄은 개사름록변(犭(=犬)과 犬(견), 즉 두 마리의 개가 言(언)을 감싸고 있는 합자(合字)다. 그리고 "두 마리의 개가 서로 짖어대므로, 전(轉)하여, 原告(원고)와 被告(피고)의 입싸움과 각(石+角)과 통하여 굳게 문을 닫고 나오지 못하게 가두어 두는 곳"이라는 정통 그라마톨로지 계열어들의 해설을 보면 문자소만 놓고 보면 갇힌 공간이 아니라 그 전의 법정(court)을 묘사하고 있다. 플라톤이 말한 회화의 왜곡이 언어에서도 벌어지고 있다.개는 늑대의 사촌이다. 야만과 문명은 자신의 사촌(cousin)인 늑대를 저버리고 인류의 보호자(man's best friend)가 된 개의 이항결합인가? 어쩌면 獄은 두 마리의 개(犭와 犬), 즉 '루프'에 둘러쌓인 '언어'(言)라는 주체(subject)일 것이다.
분명히 그라마톨로지는 言에 대하여 '혐극'(嫌隙: 서로 꺼리고 싫어하여 생긴 틈)이라는 '히멘성'을 묘사하고 있다. 두 여성 루프의 길항 작용의 결과 생겨난 '간극'(間隙)일 가능성이 있다.
言에 대해서는 辛과 口의 합자(合字)로 본다. 辛은 쥘손이 있는 날붙이의 상형(象形)이요, 口(구)는 맹세(盟誓)의 문서(文書)다. 그렇다면 '言 = 辛 + 口'이라는 언어 방정식이 성립된다. 따라서 네거티브 필름의 검붉은 빛깔인丫라는 문자소가 인화(development) 과정에서 하얀 색으로 발현(présence)되기라도 한 것처럼 아주 과학적으로 증발해 버렸다.
자, 그라마톨로지의 해설서들은 당대 최고의 한학자들이 모여서 현재까지도 검토를 진행 중이다. 우리는 이 사라진 신의 문자소, 즉 丫에 대한 아주 과학적인 입증이 필요하다고 본다. 나는 허신이나 장옥서가 실수를 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만큼 그라마톨로지는 한 획, 한 획이 아주 정교하게 우주 언어 입자의 키네틱과 의미소를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02] 언어는 프로이트의 무의식의 세계에서 아주 체계적으로 구성된 생명체에 가깝다. 그러나 그가 전념하여 연구한 테마인 '욕망'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미셸 푸코의 '생권력'(bio-pouvoir)의 권력성이 함께 움직인다. 가령 영어의 pen은 '감옥'이나 '울타리'가 된다. '언어 감옥'의 패러다임이 발견된다. 이는 그라마톨로지의 獄에 명확히 존재하는 언어를 가리키는 문법소(grapheme)인 言을 통해서도 다시 확인되는 사실이다.
답글삭제스페인어에서도 펜을 뜻하는 pena가 바로 '형벌'이나 '고통', 혹은 '슬픔'이 된다. 이 언어도 놓고 보면 우연의 일치, 혹은 소쉬르의 가장 큰 착오 중 하나인 언어의 임의성(arbitrariness)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바로 앞 문장에서 말한 것처럼 그라마톨로지에서는 거꾸로 '감옥'에 '언어'가 나온다. 정확히 동일한 인지 모듈의 발현이다.
물론 영어의 pen이 작은 우리(= playpen)나 우리 안에 든 동물, 더 나아가 '교도소'(penitentiary)를 뜻하는 것은 라틴어의 줄임말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비교언어적 연구 방법론이 절실하다. 더 이상 특정 언어 하나에 드러나는 패턴으로는 수용하기 어려운 글로벌 시대가 되어 버렸다. 최소한 언어학 연구에 있어서는 '기술 문법'의 차원에서는 특정 언어의 음소 분석이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음소나 의미소 분석은 이미 많은 진전을 이루었고 내가 알기로는 거의 모든 주요 국가에서는 더 이상 새로운 연구가 어려운 단계가 왔다고 본다. 이제는 글로벌한 시각에서 '분석 문법'이 필요한 단계다. 그럼 영어의 pen도 '언어를 위한 행위 도구 = 감옥'이 되어버린 것을 하나의 언어만 두고 보면 penitentiary라는 라틴어가 줄어드는 바람에 생긴 현상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어떻게 스페인어도 동일하게 pena라는 어형을 완성해서 '언어 = 형벌'이라는 정확한 공식을 드러낸단 말인가? 게다가 그라마톨로지의 獄에 등장하는 '언어'(言)는 어찌할 것인가?
프랑스어는 과거에 쓰던 깃털 펜을 가리켜 plume라 한다. 그런데 '침대'나 '잠자리'(= plumard, lit)도 뜻한다. 물론 베개(pillow) 안에 '깃털'이 들어간다. 그러나 침대 매트리스 전체에 깃털을 넣을 정도로 부유한 왕이 몇 명이나 되었을까? 게다가 로마의 교황에게도 강요할 정도로 문법성을 판별하던 이들의 권위가 대단했던 시절, 그 문법학자들은 결코 사치를 누리지 못 했다. 상당수의 성직자들이 청렴성을 유지하면서 살아갔다. 자녀들도 없었고, 사후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도 없으니 현실의 부유함에 집착할 리가 없었다. 그들에게는 오로지 신의 진실, 혹은 우주의 형성에 대한 신학적 맥락의 관심만이 있을 뿐이었을 것이다. 물론 아주 극소수 타락한 성직자들은 있겠지만 그런 예외적인 부류들이 '문법 활동'을 펼치던 무수한 성직자 및 진짜 제대로 된 학자들을 판별하는 바로미터가 될 수는 없으리라. 그렇다면 자신들의 침대에는 존재하지 않던 그 비싼 '깃털'을 왜 '침대'와 연결지은 것일까? 프로이트의 휴식 공간인 것이다.
베트남어에서 연필을 가리키는 bút chì를 보자. bút은 '펜'을 가리킨다. 그런데 chì는 '납'이다. 그리고 chỉ는 '실'이나 '가리키다'라는 언어릴(the Reel) 현상을 보여준다. 鉛筆에 등장하는 鉛(납)을 고려해 볼 때 chì는 '납'이라는 의미로 사용자들은 선택하여 골랐다고 여길 것이다. 그런데 결국 '실'이 되어 버렸다. 결국 더 정확한 어휘소가 되어 버렸다.
'펜' 등 언어 집필 도구에 '감옥'이라는 의미소가 연결되는 현상은 보편 문법의 일종이 분명하다. 연필(鉛筆)에 대한 일본어는 えんぴつ다. 그와 동시에 '음경(陰莖)'의 은어다.
[03] '뻬뻬'의 가면 놀이가 벌어지는 중이다. 흔히 문학은 모국어(the first language or mother tongue)로 이뤄진다고들 대부분의 문학가들은 물론이고 거의 모든 언어 사용자들이 굳게 믿는다. 그럼 이하에서 장진경이라는 한국의 시인의 시를 사례로
답글삭제어떻게 메타 기호계가 움직이는지 살펴보자. 일단 이 시인이 프랑스어나 스페인어를 전혀 모른다고 할 수는 없다. 물론 대부분의 한국의 대학 졸업자처럼 일정 수준 이상의 영어 실력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인에게 물어보나마나 자신의 시를 쓰는 것은 '한국어'라는 언어라고 강하게 믿고 있을 것이다. 물론 일본어나 중국어로 시나 소설을 쓰고 있는 문학가들도 분명히 그라마톨로지나 가나 문자라는 '수단'에 의해 전개되는 자신들의 언어 자체로 표현한다고 볼 것이다. 그러나 이하의 시를 보면 '외국어 채널'이 형성되고 있다.
"여자 눈에 노인은 오목거울 속의 형상이다 소통을 모르는 진공관, 치매가 노인을 여자와 분리한다 주름 깊은 노인 몸에서 재생되는 아기 얼굴, 여자가 정지 버튼을 누를수록 노인은 오목거울 저편에서 태아처럼 웅크리고 앉는다 가면놀이인지도 모르는 가면놀이를 한다 너무나 성급하게 윤회해버린 영혼 노인의 늙은 육체에서 양수가 출렁거린다 시간을 망각한 노인과 시간을 기억하는 여자가 다툰 날, 해질녘 놀이터에서 여자 홀로 욕타임을 한다 맨드라미 꽃잎 같이 벌건 욕들, 농염한 말 앞에선 어떤 나비, 벌이든지 기가 죽어야 하는 비기(飛機), 암전 속에서 여자는 잠시 가면을 벗는다허울 벗은 맨 얼굴에서 솟은 우물 수면을 가르는 두레박이 찰랑이는 어둠을 퍼낸다 가벼워진 여자 몸에서 마디 하나가 생긴다 우후죽순 욕소나기가 있어 여자는 노인을 돌본다. 대숲의 바람소리 품으며 한가로이 노인과 가면놀이를 한다"
정진경. 웹진『시인광장』2010년 봄호(통호 제16호)
위의 시에서 '노인 = 여자'다. 치매를 통해 둘은 분리된다. 치매는 언어상실(aphasia)일 것이다. 그런데 프랑스어는 '노인'과 '여자'를 각각 pépé와 pépée라는 아주 흡사한 어휘로 표현한다. 흔히 생각하는 출산은 '노인'의 몫이 아니다. 즉, 인간들이 사용하는 언어 감각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양면결합성이 작용한다. 이러저러한 자세한 언어학적 근거는 너무나 많은 지면을 또 다시 할애해야 하므로 일단은 '가면놀이'에서 핵심적인 축으로 설정한 '노인의 출산'이라는 아주 기괴한 발상을 보자. 시적인 거만함인가? 문법 파괴에 이어 기존의 생명 과학에 대한 반기를 든 것일까? 아주 간단히 보자. 프랑스어로 pépé와 pépée로 이어지는 언어 패러다임이 존재한다. 물론 이와 관련된 무수한 다른 언어들의 흔적이 당연히 있다. 여기서는 위의 시 자체에 드러난 몇 개의 중요한 이미지를 통해 언어 감옥의 존재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이미 언급한 것처럼 '노인 = 여자'(pépé = pépée)라는 동음이의어가 존재한다. 분명히 철자와는 달리 두 어휘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발음은 아주 똑같다.
둘째, 프랑스어에서는 '가면'과 '달팽이'를 각각 máscara와 caracol이라 한다. 칼융은 풍뎅이(scarabée) 사건을 통해 자신의 무의식의 원형에 관한 연구에 더욱 박차를 가한다. 그리고 가면에 버금가는 피에로의 화장을 필수적으로 하는 이들 중 과거 이탈리아 희극의 광대는 scaramouche다. mouche는 (1) 파리 (2) 인조 미끼 (3) 얼굴에 붙이는 애교점 (4) 과녁 중앙의 흑점 등을 뜻한다. moucheture는 (1) 얼룩이나 반점 (2) 얼룩 무늬 (3) 고름 등을 없애기 위한 피부의 난자(亂刺)를 뜻한다. 그럼 이러한 언어적 흐름은 칼융의 단어 연상법(자극어에 대해 환자가 연결짓는 어휘들을 통해 무의식의 패러다임을 발견하는 임상치료기법)을 일정 부분 수정하여 언어학 연구에 도입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일단 정진경 시인의 작품에 등장하는 키워드들은 칼융의 '단어 연상소'다. 즉 A와 B라는 키워드가 반복적으로 연결되어 나타날 때 둘은 동의어가 아니다. 그런데 외국어로 번역을 하고나면 '노인 = 여자'(pépé = pépée)라는 동음이의어 및 máscara와 caracol이라는 연상소가 드러난다.
"한 시대가 기획한 가면과 그 진실을 모르는 척하는 연기 중 어느 것이 더 리얼할까요? (...) 꿈의 제조공장이 만들어낸 검열을 즐길 것인지
환상을 버리고, 몽타주된 시간을 택할 것인지 말하라 하는군요 하지만 나는 No라고, 무대가 암전되는 동안 당신이 Yes라고 입력한 사건들을
역설적 화법으로 되묻곤 하지요 내 속엔 아주 여유롭게 비틀린 달팽이가 한 마리 살아요 느린 달팽이 몸에도 자유를 갈망하는 혼이 있다는 걸 인식의 촉각에 난 더듬이를 당신은 검열하지 못했군요
방치된 진실을 편집할 수 있는 기법 비아리스토텔레스식 연극을 즐길 수 있는 티켓 한 장만 주세요
-「비아리스토텔레스식 관람법」(중에서) -
"찢어진 사과껍질 틈 새로 서커스단 아이들이 보였다 연체동물처럼 휘어진 허공 딛는 다리를 보며 그 겨울에 나는 바람수업을 받았다 유년의 성적표에는 가, 가, 가…로 가득 채워지고 환약처럼 쓴 세상의 질책마저 삼킨 슬픔에 길든 육체는 비틀어져 있다 소리죽여 외우는 대사, 유랑 극단 배우들의 빨간 루즈에서 묻어 나오던 난수표 같은 방백들을 나도 모르는 새 읊고 다녔다 가마니 밑에 깔린 울음이 버석거리는 막간, 생의 1막과 2막 사이 걸린 사과, 목구멍에서 잘게 부서진다 3막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어느 목구멍에 걸려 펄럭인다 구멍난 구두 밑창, 페타이어 타는 냄새 역겹게 오르내리던 유년의 그 공터, 장작불 곁을 맴돌면서 느낀 그 겨울날 오한처럼 비틀어진 사과, 내게는 잊지 못할 환약이다"
-「생의 1막과 2막 사이에 걸린 사과」-
「비아리스토텔레스식 관람법」에서는 '가면'과 '달팽이'가 키워드다. 프랑스어의 máscara와 caracole이 등장한 것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생의 1막과 2막 사이에 걸린 사과」에는 서커스단 아이들이 나온다. scaramouche(이탈리아의 희극 광대)다. 또 우연의 일치일까? 정진경 시인은 또 다시 초반에 '달팽이'(연체동물처럼 휘어진 허공 딛는 다리를 보며)를 언급한다.
"유년의 성적표에는 가, 가, 가…로 가득 채워지고 환약처럼 쓴 세상의 질책마저 삼킨 슬픔에 길든 육체는 비틀어져 있다 소리죽여 외우는 대사, 유랑 극단 배우들의 빨간 루즈에서 묻어 나오던 난수표 같은 방백들을 나도 모르는 새 읊고 다녔다"
그리고 No라고 외친 후 무대가 반전이 되고 '레이디 가가'가 굴뚝(프로이트의 공간이다)으로 들어간다. 따라서 메타 기호계는 존재할 가능성이 아주 크다.
한 시대가 기획한 가면과 그 진실을 모르는 척하는 연기 중 어느 것이 더 리얼할까요? 꿈의 제조공장(factory), 나는 No라고, 무대가 암전되는 동안 당신이 Yes라고 입력한 사건들을, 가, 가, 가…로 가득 채워지고............. 쉬르레알리즘일 것이다.........................
자, 정진경 시인이 레이디 가가의 퍼포먼스를 보았을까? 분명히 목격한 후 강한 인상을 받아서 쓴 시들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저렇게 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본인의 자백을 받아내는 것이 마지막 남은 사건 해결의 길이다.
[04] 유클리드(Euclid)의 저서에는《보조론(補助論)》, 《도형(圖形)의 분할에 대하여》가 있으며 응용수학서로는 《구면천문학(球面天文學)》, 《광학(光學)과 반사광학》, 《음정(音程)의 구분과 화성학입문(和聲學入門)》등이 있다. 그리고 현대에 가장 잘 알려진 저서는《기하학원본( Stoikheia(》(13권)이다. 바로 '플라톤'(Plato)의 기하학을 기초로 탄생된 책이다.
답글삭제자, 루프는 한 마리인가, 여러 마리인가? 뻬뻬는 여자인가 노인인가? 그리고 과연 어느 곳에 위치할까? '가면'(máscara)과 '달팽이'(caracol) 사이에 존재하는 언어적 공유소(cara)를 전혀 모를 순수한 '반도어 계열 시인'은 정진경은 어떻게 가면과 달팽이를 연결지은 것일까? 그리고 '노인'(pépé)과 '여자'(pépée)가 아주 동일한 음소인 'pepe'로 발현된다는 점을 정진경은 알았을까? 그리고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미지인 '나비'에 상응하는 스페인어인 'mariposa'는 'pépé = pépée'라는 동성 연애자, 즉 두 마리의 여성 루프였다는 메타 기호소를 과연 알고 반복적으로 나비와 여성성을 반복한 것일까?
자동 글쓰기는 존재한다. 그리고 아주 정교하게 메타 기호계의 원리에 충실하다고 본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위대한 문학론, 즉 자연의 모방을 찬미한 대목이다.
[05] 스티븐 호킹은 양자론을 블랙홀에 적응시켜 '호킹복사'를 알아냈다. 양자론으로 보았을 때 진공상태는 입자와 그 반입자의 쌍이 생겼다가 소면하고, 소멸하였다가 다시 생기는 상태를 말한다. 입자 · 반입자 쌍은 어느 한쪽은 양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고 다른 한쪽은 음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데, 블랙홀은 그 중 음의 에너지를 빨아들이고 빨아들인 에너지 만큼의 질량을 잃어 버린다. 그리고 양의 에너지를 가진 것은 밖으로 뛰쳐나간다. 그래서 블랙홀은 마치 질량을 잃어버리면서 입자를 방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것을 '호킹복사'라고 한다.
답글삭제이처럼 블랙홀 자체가 순간적으로 화이트홀이 된다. 그 사이에 아주 얇은 '웜홀'이 있을 것이다. 물론 가느다란 선이 이쪽으로 돌진하면 '점'처럼 보인다. 가령 펜을 수평으로 놓고 앞이나 뒷부분을 눈에 가까이 대보자. '점'일 것이다. 그러나 좌측에서 관측하면 '직선'이 된다. 물론 사실은 중력의 작용으로 '곡선'(arche)이지만. 아무튼 수학 그래프의 1사분면을 플러스, 3사분면을 마이너스로 설정해보자. 절댓값은 동일하다. 가령 순간적으로 develop가 1사분면으로 발산되는 순간 잉크처럼 채워버리는 '블랙'으로 인지되지만 그 develop라는 언어 입자의 반입자는 그 뒤로 '감소'하는 develop가 된다. 그러나 스칼라 포텐셜은 동일하다. 결국 입자와 반입자를 통합할 필요가 있다. 이재웅(2012. "Boa의 법칙". . 도서출판 제이) 참조.
호킹이 너무 일찍 무릎을 꿇은 것이 아닌가, 이런 아쉬움이 살짝 남는다.
[06]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연구는 양자론과 상대론을 하나의 이론으로 통일시켜 보자는 것이었으나 실패로 끝났다. 그리고 그 후 많은 이론 물리학자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연구를 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완성되지 못하고 있다. 이 와중에 1975년 스티븐 호킹이 상대론과 양자론을 함께 묶는 시도로, 블랙홀 주위에서 앵자론적인 현상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블랙홀은 그다지 검지 않다'는 이론을 발표하였다.
답글삭제이 이론은 그동안 주위에 모든 물질을 잡아 먹기만 하는 블랙홀이 복사 형태로 에너지를 밖으로 방출한다는 내용이었다. 이것은 마치 '흑체복사'와도 비슷한데, 흑체복사란 일정한 에너지를 흡수하여 특정온도가 되었을 때, 복사의 형태로 전자기파를 방출하는 것이다. 이것은 전기난로가 빨갛게 달아올랐을 때 빛과 열을 내보내는 것과도 같다. 들어가는 것이 무엇이든 밖으로 나타나는 것은 온도로, 에너지에 관한 정보만 줄 뿐 다른 정보는 없어진다는 것이다. 난로에서 겉으로 나타나는 것이 온도인 것처럼, 블랙홀은 질량, 전하, 각 운동량만 남고 빨아들인 물질의 나머지 정보는 분실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문제점이 있었다. 블랙홀은 물질을 삼킬 뿐만 아니라 양자 역학적인 정보마져도 삼켜버리는데, 블랙홀로 물질이 빨려 들어가기 전과 후의 정보의 양은 같아야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론물리학에서 30년동안 논쟁 거리가 되어 왔다. 사실 7년 전에 스티븐 호킹은 이 문제에 대해 캘리포니아 공과 대학의 입자물리학자인 존 프레스킬교수와 내기를 했었는데, 호킹은 블랙홀이 삼킨 정보는 절대로 회복할 수 없다는 쪽에 걸었었다.
하지만 지난 2004년 7월 21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열린 '제 17차 상대론 및 중력 학회'에 초청 강연자로 참석한 스티븐 호킹 박사가 50여 개 나라의 800여 물리학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 이론을 뒤집어 버렸다. 그가 새롭게 발표한 이론에 따르면 블랙홀의 표면인 지평면의 내부에서 양자의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 움직임은 블랙홀 안에 있는 정보가 점차 밖으로 새어 나온다는 의미로, 블랙홀이 물질과 물질의 양자역학적인 정보를 삼켜도 이 정보는 다시 밖으로 흘러 나와 결국 정보가 보존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2004년 7월 21일 스티븐 호킹은 프레스킬교수와 내기에 졌다고 밝히고, 내기에 진 대가로 그에게 야구 백과 사전을 주었다.
[07] "호킹은 빅뱅이 일어나는 순간에 중력 이론과 양자역학이 상충한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블랙홀 안에서도 둘이 상충한다고 믿습니다. 블랙홀 안에선 수많은 물질이 짓눌려 작은 점이 됩니다. 그래서 그는 블랙홀을 다시 연구합니다. 블랙홀 안에서 두 이론을 통합할 수 있다면 빅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블랙홀의 경계에는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고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갑니다. 하지만 양자역학에서는 빈 공간은 존재하지 않으며 짝을 이룬 미세 입자로 가득합니다. 우리가 공간을 바라볼 때는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미시 세계에선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끊임없이 생겨나는 가상의 입자들로 가득하며 서로를 파괴합니다. 에너지 파동은 공간에서 작은 입자를 생성하며 모든 입자에는 그에 상응하는 반입자가 존재합니다. 하나는 양 에너지를 지니며 다른 하나는 음 에너지를 지닙니다. 새로 생성된 이 한 쌍은 충돌하며 서로를 파괴합니다.
답글삭제그는 번득이는 영감을 얻습니다. 입자가 양성과 음성으로 나뉜다는 사실에 해답이 있습니다. 호킹이 깨달은 흥미로운 사실은 이런 한 쌍의 입자가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 근처에서 생성되면 음 에너지는 블랙홀로 유입되지만 양 에너지는 복사되어 탈출합니다. 음성 입자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지만 양성 입자는 에너지가 충분해 빨려 들어가는 걸 피할 수 있고 복사 입자로 방출됩니다. 호킹은 블랙홀이 열을 발산하며 양성 입자가 에너지원이라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이것을 '호킹 복사'라고 부릅니다.
블랙홀을 탈출할 수 있는 존재의 발견은 세상을 놀라게 합니다. 호킹은 중력이 음성 입자를 빨아들이는 한편 양자역학에 의해 양성 입자가 탈출한다는 사실을 입증합니다. 이제 일반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은 양립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만물 이론에 가장 근접한 이론입니다."
* 출처 -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57&contents_id=9380)
그런데 이러한 양면결합성의 순간적인 블랙과 화이트로의 분출이 언어에서도 일사불란하게 발현되고 있다면 어찌 할 것인가? 우주문법성(Universal Grammaticalness: UG)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우리의 인지 모듈은 어디에서 출발한 것인가?
아주 명백한 사실은 우리는 '무'(Nothing_라고 '인지'한 바로 그 순간까지만 그럭저럭 '관측'을 한다는 점이다. 그 뒤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서로 머리를 맞댄 A가 모양을 떠올려보자. 순간적으로 응축된 모든 '이미지들'과 '물질'들이 이쪽과 동시에 저쪽으로 입자와 반입자 구조를 그리며 발현되었을 가능성은 없을까? 중요한 것은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물질'만을 전제로 한 방정식으로 가득하기에 아마 '반물질'을 통계에 집어 넣으면 모조리 수정을 해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07] 서로 밀치는 힘(인플레이션 우주론에서 강조한 팽창력)이 없다면 서로 당기는 힘(뉴턴의 중력)으로 인해 아주 작은 점으로 되돌아 갈 것이다. 결국 중력(= 끌어당기는 힘)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아주 조그만 '점'(빅뱅이 맞다면 그에 상응하는 최초의 존재나 절대 수축 상태)으로 환원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반물질이 밖으로 밀쳐 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답글삭제우리는 끊임없이 '증발'과 '탄생'을 반복한다. 다중 우주이기 때문일 것이다. 금세기 안에 '관측 우주'(the perceived universe)와 '실제 우주'(the "reel" universe)의 격차가 어느 정도 좁혀지기를 희망한다.(발표일 2013년 6월. 저작권자 이재웅(tigersvv10@naver.com)